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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원장의 살림토크

살림이란 살리라는 명사입니다.(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황재형화백님의 回天을 보고
관리자
조회수 : 1182021.06.0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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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화백님의 回天을 보고

ㅡ최명숙

앞산에 드문드문 새치같았던 산벚꽃도 지고 연녹색의 새나무들이 제마다의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는 시절,
SRT는 지나가는 시간만큼의 속도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황재형선생님을 만난 것은 삼년전 어느 겨울, 양구 박수근 미술관에서 열린 미술캠프였다.

나는 막 오래된 나의 꿈중의 하나인 그림그리기에 몸과 마음이 가 있던 때인지라, 별 생각도 없이 친구따라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처음 해보는 색면 작업과 태백연구소사람들의 강의는 미술공부가 아닌 마음공부에 가까웠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특히 저녁이 으스름할때 뒷산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내가 죽을 무덤에 누웠을 때같은 느낌으로, 같은 자리를 영하 14도의 새벽에 다시 가서 심상화를 그리고 내려오던 그날의 기억이 마음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 새벽, 앞산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아스라이 현현한 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반야에서의 캠프.
늙고 오래된 영험한 소나무 할아버지는 마치 황선생님과 닮아 있었다.
그 캠프에서 여러 오브제들이 주검에서 살아나는 창작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미술이 아닌 삶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은총이었다.

오늘은,
백두대간을 닮은 사람들, 태백연구소와 큰 나무 황재형선생님의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回天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는 날이다.

1980년대의 젊은 광부사원증의 황선생님부터 2021년의 황선생님의 큰 산까지 세월과 투철한 사십년의 삶을 한 눈에 볼 수있고 느낄 수있는 기회였다.

머리속의 민중이 아닌, 실제 민중의 삶과 함께 했던 젊은 화가의 실천적 삶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던, 황지 330(1981).

매몰 사고로 돌아간 광부의 작업복을 사실주의로 그린 작품이다.
한동안 그림앞에 서서 고통과 회한과 막장에서 돌아간 그의 삶으로 들어갔다.

목욕(씻을수 없는,1983)과 식사(1985)는 탄광 노동자의 현실과 일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고,
잠시의 고단함을 잊고 가족들과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고있는 그림에서 그들의 즐거운 오후보다는 내 눈에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은 신발위의 검정색으로 드러난 발목이 더 애닲아 보인 것은 무엇일까.

황선생님은,
`편안한 잠자리에서 자는 이에게 경각심을, 불편한 잠자리를 갖는 이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가장 최근작인 메탈 지그와 탄산부를 그린 작품앞에서는 고인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매몰되어 사망한 광부의 아내는 먹고 살기위해 탄산부가 되어 석탄을 선별하고, 망연자실한 눈빛과 어항속에는 가짜미끼의 날까로운 꼬리를 가진 메탈지그(루어)들이 있다.

그녀의 눈은 절실함조차도 없는 멍한 절망이 가슴이 미어지는 깊은 슬픔이 아니던가.

가짜가 진짜를 잡아버리는 리얼리티와 평생을 석탄의 찌든 삶을 벗어날 수없어 산업화의 미끼를 물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아낙의 삶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이었다.

어디 아낙만의 삶만 그러하겠는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늘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수 없고 가짜가 진짜를 낚아버리는 세태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가 넘어지다(속아넘어지다)
사년전 그 정부의 국정농단과 적폐에 속아 넘어진 황선생님의 누운 소는 웃고 있었다.(비웃음이었을까?)

그리고 그 사년후에 지금은 어떠한가?

`이것이 나라인가`에서, `이것은 나라인가`로
또 한번의 소가 넘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자리(2011~2013),
그 눈물 그렁그렁함에서 오는 애잖한 아버지 삶의 주름들.
그래, 아버지는 위대한 슬픔을 고난으로 살아내셨구나.

그리고 또 다른 오브제인 머리카락작업이다.

황재형선생님의 머리카락은?

`` 내게 머리카락이 사무치는 까닭은 머리카락은 개개인의 삶이 기록된 피름과 같고 그리하여 곧은 정신성이 느껴져서이다"

드러난 얼굴(2017)은 세월호의 가족을 그렸다고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횡하고 멍한 눈에는 분노조차도 넘어가 버린 깊은 슬픔과 고통이 보였다.

다만,
노동자들이 함께 거리에 나와 즐기는 그림안의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서 나는 진한 희망을 보았다.

그림안의 어떤 사람의 표정에서도 불유쾌함이나 절망 혹은 고통의 흔적이 없다.
함께 즐기고 웃는 일탈이 주는 행복한 시간이 참 기쁨으로, 무거움을 홀라당 날아가게했다.

그리고,
백두대간(1996~2008).
이 그림은 무려 12년을 그리고 또 그리고 고치고 고치며,황선생님과 함께 살아온 그림이다.

태백에서 동해까지, 지상에서 저 우주까지를 아우르는 우리 민족의 산, 그 깊고 높고 포근하고 장엄한 기운이 서린 민족의 산이 거기 우뚝 서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황선생님을 보있다.

큰 몸집과 투박한 손안에 있는 따뜻한 인간애를 보았다.

반야의 깊고 큰, 할아버지 소나무가 내 안에 깊이 들어와 계셨다.

존경과 감사한 마음은
동해바다물을 다 퍼가도 메마르지 않는다.

황재형 스승님,
늘 건강하시고 은총을 기도 드립니다.

2021.5.3일
반야의 할아버지 소나무를 그리며 요요쓰다


"안에서 허물리고,
밖으로 파이고 깍인 산들은
제 아픔과 상처를 숨긴 채로,
오랜 시간만큼이나 굳게 자리하여
오늘도
산을 베고,
산을 덥고,
산을 마시며,
선잠이나 청할것이다"
ㅡ황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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