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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원장의 살림토크

살림이란 살리라는 명사입니다.(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관리자
조회수 : 1302021.06.09 16:28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홍어가 가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가 가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



17세기초, 일찍이 임진왜란후 일본과 중국에 전파된 천주교는 북경을 오가는 조선사신들이 서양문물과 새로운 서양지식에 갈망으로 예수회 선교사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가 조선에 들어오고, 천주교는 당시 지식인학자들의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전해지기시작했다.

이억,권철신,정약전등은 강학회를 만들었고 1784년 이승훈(정약종의 사위)이 최초로 영세를 받으며 이벽, 정약전과함께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1791년 진산의 신자, 윤지충이
모친상에 제사를 거부하고 위패를 불사른 일로 최초로 천주교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당시는 정조임금때로 정조는 처음 천주교에 대해 상당히 관용했으나 성리학자들의 충효사상과 관습 그리고 시파와 벽파로 나뉜 사대부의 권력싸움과 얽혀져 피바람나는 신해박해가 시작되고 그로부터 10년후,

1800년 정종이 갑자기 승하하고 1801년,어린 순조가 등극하고 정순왕후가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그녀는 벽파(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함)인 김귀주의 누이여서 벽파와 손을 잡고 반대파인 시파,남인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오가작통법으로 천주교인들의 철저한 색출과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은 이것도 어찌보면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숙청의 방편으로도 생각된다.
충효라는 명분하에 자행된 반대파제거, 적폐라는 이름으로 반대파를 자르는 요사이와 크게 다를바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모두 적폐이고, 타인의 시간과 생각은 존중할수없는 내노남불의 시대니까.
그때는 천주교가 적폐였을 것이다.

1801년, 황사영(정약종의 형인 약현의 사위)의 백서 사건에 신지도와 포항으로 유배갔던 정약전,정약종, 정약용 삼형제(정약현은 종형으로 집안을 지키기위해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음)는 다시 한양 의금부로 송치되고 정약종은 끝까지 배교하지 않아 최초의 중국인 선교사인 주문모신부등과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당시 벽파들은 정약용을 죽이기위해 온갖 모략을 다했지만, 약전과 약용은 배교하여 목숨을 부지되었고, 귀향을 떠나게 된다.

정약전과 약용은 나주에서 갈려서 약전은 바다건너 흑산도로 약용은 외가가 있는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된것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며 시작이다.

영화는 정조와 약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버텨라,
끝까지 버티는 자만이 살아남고 이루는 것이다"

정조의 이 한마디부터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은 나의 긴 회한이기도 했다.

천길만길 바다건너 절망을 안고 흑산도에 도착했을 약전의 마음은 어찌했을꼬.
천주를 배신했다는 마음과 세상에서 배척당하고 희망이없는 곳, 갈매기와 머언 수평선만 아득했을 것이다.

무료하고 공허한 날들속에 우연히 창대라는 양반의 서자(사실은 상놈이었다)를 만나고, 창대의 삶인 물고기에 대한 세세한 지식에 탄복하고 종이에 가득한 관념의 철학인 성리학을 실제의 삶의 철학인 실학의 정신을 보았을 것이다.

점차 자연과 순수한 어부들인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며, 흑산도 주변의 해양생물에 대한 특성과 습성, 쓰임새에대한내용을 적어보는 일을 시작하였다.

절망을 이기는 첫출발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대는 그에게 어보를 적을수있는 산 지식을 그는 창대에게 성리학의 기본인 사서삼경을 가르치며 우리나라 초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인 `자산어보` 를 쓰게된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사람(약용)에게 글을 쓸때 늘 흑산을 자산이라고 쓰곤 했다.
그래서 책이름도 흑산어보가 아닌 자산어보로 된것이다.
자산은 검을 현자가 두개로된 글씨인데 "현산어보"로 읽기도 한다.

약전은 강진에 있는 다산과 계속 편지로 연통하며 글을 다듬었으리라

두사람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매,
강진으로 유배간 다산은 일단 뭍이고 외갓집이 있는 곳이었고 제자들을 기르고 수많은 책을 썼지만,
바다건너 깜깜한 수평선만을 바라보았을 약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두사람의 길과 운명, 그리고 두사람의 호기심과 성실함은 고통을 고난으로 이끌어낸것이 아니었을까.
정조가 끝까지 버텨라는 마음의 말을 가슴 한켠에 두고 고향을 그리워했을 옛사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지기만하다.

정약전은 1814년 정약용이 해배되어 형을 찾아 올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동생을 멀고 헝한 곳까지 오게 할수없다며 우이도로 마중나갔다가 끝내 꿈에 그리던 동생을 만나지못하고 1816년 여름, 59세의 나이로 천국에 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 장창대
당시는 반상의 차별이 심하고 돈과 연줄로 벼슬을 살수있던 시대였으니 아전(공직자)의 가렴주구가 심했던지라 창대 역시도 흑산도보다는 세상에 나가 출세하고 정약용의 경세유표등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나 현실은 벽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스승은 책 한권 남기고 이승을 떠나버린 후였다.

예나 지금이나 당파싸움이 계속되고 LH사건같은 공무원들의 부패가 형태만 바뀌었을뿐 반복되는 역사가 부끄러운 날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영화촬영지인 도초도에 가서 정약전선생의 외로움과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여전히 가슴에 담아 있었을 천주님에 대해 느껴보아야겠다

2021.4.9
마리아 막달레나,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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