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진료에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광주현대병원

진료시간 안내

062.570.0114

원무과 570.0005 / 응급실 570.0119

  • 평일

    AM 8:30 ~ PM 17:30
  • 토요일

    AM 8:30 ~ PM 12:30
  • 공휴일

    AM 8:30 ~ PM 12:30
  • 점심시간

    PM 12:30 ~ PM 01:30
  • ※진료시간표는 각 진료과 사정에따라 접수가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최명숙원장의 살림토크

살림이란 살리라는 명사입니다.(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셋째오빠를 기억하며
관리자
조회수 : 1932021.06.09 16:27

울 셋째오빠, 최동천은 1955년 8월 12일 무등산아래 태어나, 2020년 3월 24일 23602번의 해를 맞이하고 장성땅에서 흙으로 돌아갔다.

작년 오늘, 환자를 보다가 조카녀석의 급한 목소리에 다 팽개치고 집으로 가던 날,
그래 오빠는 끝까지 우리집을 지키고 있었구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오빠가 아주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리는 깊은 포옹으로 작별을 했다.

'오빠,미안해'

정말 얼마나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말인가.
이생에서 마지막 말을 이렇게 돌려준 나의 기억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어릴적 기억에 오빠는 늘 사진 속의 한컷으로 남아 있다.

가마미해수욕장에서 할머니의 과감한 나체 앞에 작은 오빠와 배꼽에 붕대를 엑스자로 붙인 셋째오빠의 꽉 다문 입.
언젠가 나는 그 모습이 나인줄 착각한 적도 있다.

오빠는 늘 만화책을 읽었다.
금옥이와 나는 만화방에 가서 책을 빌리고 이층 너른 방에서 종일 함께 따뜻한 방에서 만화삼매경에 빠지고, 가끔 화투놀이도 했다.

삼봉, 물주, 돌이지꼬땡 나의 화투의 모든 것은 오빠의 정신적 유산이다.

광주고등학교에 들어간 오빠는 야구선수가 되었다.
하얀 야구복에 빠다방망이는 오빠가 가진 분노를 받아 주기에 합당한 것이었을 것이다.

형제중에 유일하게 어린 나이에 목포에 있는 친척에게 공부잘하라고 맡겨져 키워진 것이 오히려 오빠를 외롭고 힘들게 했으리라 짐작한다.(나는 안경쓰고 날까롭게 생긴 그아저씨가 별로 맘에 안들었다)

그래도 오빠는 야구공을 열심히 두드리면서 분노의 창조적 전환을 했으리라.

여수 수산 전문대학으로 입학했던 오빠가 거기를 졸업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걸보면 아마 오빠가 원하지 않는 진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쁘고 야무지고 현명한 아내와 결혼해서 똑똑하고 건강한 두아들을 두었다.

젊어서는 온 산을 사냥총을 가지고 멧돼지를 잡으러 다녔을 오빠.
동물이라는 동물은 늘 오빠의 삶의 동무였다.
칠성약국건물 4층에는 동물들의 천국이었고 오빠는 이웃들의 아우성은 아랑곳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았다.

그리고 나이들어서는 그 어렵다는 한국마사회의 마주가 되어 제주에서 장성에서 말들을 키우고 돌보았다.

물론 나는 나의 장성땅에 있던,( 오빠가 그땅에 심었던 단감나무밭, 울어매가 내게 준 유일한 땅 천평)을 하루아침에 사라진 단감과함께 오빠의 말농장으로 울타리 쳐준 기억이 난다.
그때도 울오빠는 하고싶은 대로하는 사람이거니하고 섭한 마음을 달래기도했다.

오빠는 성질이 급했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나는 어려서 이후 단한번도 오빠가 나에게 홰내는것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늘 귀기울려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오빠였다.
오빠주위의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리있고 인정많은 오빠를 좋아했을 것이다.

온 산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던 오빠가 버거쓰씨병과 당뇨합병증으로 발목이 잘리던 그날 밤,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오빠가 견뎌내야할 불편함보다도 더 일찍 더 관심을 두지못한 의사인 나를 자책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다.
그래도 오빠는 그 상황을 정말 잘 견뎌내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에 4층까지 업혀서 올라가는 일이 늘 힘들었겠지만, 오빠는 우리 아버지의 그 집을 지켰다.
나는 오빠집에 갈때마다 그집을 지키고 있는 오빠의 맘을 생각했다.
아직도 내식대로 오빠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가 간에 멍울이 생겼을 때, 실은 엄청 충격이었지만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오빠를 보고 더 힘들었지만 인생에 두번의 기회는 없으니까 선택은 본인의 몫으로 애써 애둘렀다.
오빠는 전남대병원을 선택했고 내동기에게 부탁하여 몇년을 투병했다.
마지막에는 힘든 항암으로 고통스러워했지만 새언니는 최선을 다해 오빠를 돌보아왔다.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영화속의 주인공이라면, 좋았겠지만, 현실의 남편이라면 반가울리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가정을 지킨 언니의 삶은 숭고한 것임에 틀림없다. 너무 감사드린다.

오빠는 이틀전에 예감이라도 한듯이 온 식구를 불러들이고 식구들는 우리집에 하나둘 모여 몇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빠가 준 선물이었다.
우리라는,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함께 밥숫갈을 상에 놓고, 함께 밥을 먹었던 그곳이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삼일여관의 은행나무가 서있고 내안에는 큰대문을 소리안나게 가만히 열고 닫던 어린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살았고 거기서 자랐고 거기서 성장했다.
오빠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그곳을 지키다, 이제는 장성땅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나는 지금도 그날, 오빠가 들어있던 그 항아리의 온기를 기억한다.

울 오빠는 마음이 참 따뜻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아주 멋진 사내였다.

오늘 아침, 새벽미사에서 나는 아버지와 어매 그리고 그옆에 서있는 오빠를 보았다.
그들이 거기서 웃고 있었다.
참 편안해보여 좋았다.
언젠가 우리 모두 그곳에서 다시 식구로 함께 숫갈을 들것이다.

그게 우리니까,

그게 식구니까.

2021.3.24 셋째오빠를 기리며 막둥이동생이


사랑한 후에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온 새벽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https://youtu.be/IsoWkbLJzpw

1년전 하늘로 돌아간 셋째오빠와의 마지막 포옹을 기억하며ᆢᆢ ᆢ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