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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원장의 살림토크

살림이란 살리라는 명사입니다.(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Solitary walking ㅡ무등산
관리자
조회수 : 8442020.09.28 10:33

Solitary walking ㅡ무등산


``산사람에게는 바우냄새가 난다.``

오랫만에 무등산 종주를 계획했다. 느스해진 몸을 깨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냄새와 소리 그리고 그 색이 함께 숨쉬는 숲이 그리워 오늘은 무등안에 길게 오래오래 머물리라.

10시 17분 산장에서 시작한 산행은 초입부터 문제다.음악을 준비하려는데 돋보기가 안보인다, 에고 어디에 또 가버렸을까? 다시 내려가? 그냥가?를 오초 생각하다 다시 차로 가보니 그앞에 떨어져있다.
준비라는것이 늘 이렇다. 스스로는 잘 챙겼다고해도 늘 한두가지가 미끄럼타게하기마련, 찾았으니 다행이다.

아주 예전에는 산장호텔이였던 곳이 언제부터인가 해설사들 교육하는 문화공간을 좌로하고 꼬막재로 향하다.

오랫만의 긴 산행이라 초입에는 몸을 속이기위해 음악으로 뇌를 마비시켜야한다.
평소에는 국악미사로 자비송을 택하는데, 오늘은 구르지예프의 오리엔탈 버전으로 첫번째 오브리가토리부터 듣기로한다.

1.2킬로의 오르막을 줄곳 올라채면 첫번째 능선 꼬막재에 도착할 터, 음악으로 마비된 몸은 아무 생각없이 두스틱에 의지한채 카운팅하며 한발한발 앞으로 앞으로 가끔씩 눈을 들어보면 햇살받은 나무잎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올라갈수록 좁아지며 숨은 거칠어갔다.
작은 키의 대나무들이 나란히 서있는 까끄막이 빨리나오길 바라며, 마음은 이미 까막재에 가있다. 옛사람들은 나무짐을 매고 이고개를 넘었을 것인디.

옛 절터는 이제 아무것도 없고 측백나무숲만 지고 12시에 꼬막재에 도착하다.

사진한장 찍고 가로 신선대 억새평전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길로 아주 천천히 즐기기만한다는 꾀보산행이다.

무등산을 옆당구 종주를 한 것은 나의 오래된 역사중하나이다.
삼십대, 남광병원외과장일때는 거의 매주 토요일 일 끝나자마자 배낭하나매고 7시간을 거쳐 꼬막재,규봉암,장불재를 거쳐 중봉,토끼등으로해서 늦재로 내려와 산장으로 내려오는 종주를 하곤했다.
7시간이 걸린 늦은 걸음걸이였지만 혼자하는 산행은 내맘대로여서 늘 편했다.
이 산행이 히말라야를 다녀온뒤에는 다섯 시간으로 줄었으니 그때가 최고의 몸이 아니었을까.

요사이는 장군봉까지갔다 가고싶으면가고 눌러앉고싶으면 책과 스케치하다 오는 게으른 산행이었는지라 오늘의 산행은 큰결심이었다.

억새평전, 예전에는 갑자기 나타는 평전이었는데 늦여름이라그런지 평전이 사라진듯, 신선대로 가는 길도 잘정비되고
누에봉으로 가는 길도 이정표가 잘되어있었다.
늘 그길에서 억새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는데, 국립공원이되면서 많이 정비가 되어 예전의 거친 맛이 많이 없어져버렸다.
농장으로 가는 자갈길도 없어지고 숲이 더 울창해졌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옛날사람은 옛것이 그립다.

돌들이 더 날을 세우는 것을 보니 규봉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게된다.
갑자기 숲에서 나오니 저어 멀리 산과산사이의 좁은 들판에 노오란 곡식이 햇살받은 부분과 구름그링자에 햇살못받은 누렁색으로 멋지다.
화순 적벽도 보이고 저수지와 어우러진 풍경이 이쁘다.
구름은 산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멀리 가물거리는 산들의 파고가 아득하기만하다.

현자들이 말하는 가물가물한 것이 이런 것인가?

길가에 생생한 청보라빛을 자랑하는 벌깨덩굴들의 군락은 눈을 씻어주고 마음마저도 깨끗해지게 되는것같다.

산에 살면 꽃들도 더 맑아 지는것일까.

산행중 발만 보고가는 솔리타리 워킹명상을 하다, 정지. 눈을 뜨고 정면을 주시하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어느덧 규봉암. 늘 이곳은 지나치고마는 곳인데 진짜 삼십년만에 규봉을 들럿다.

예과때 처음으로 파마하고 더풀거리는 머리에 카메라들고 사진반애들이랑 겨울산행을 하다 들린, 작은 암자밖에 없어 가난했던 절,규봉암. 그 따뜻했던 구들목이 아직도 엉덩이에 남아있는데, 눈앞의 규봉암은 아주 멋진 절이
되어 있었다. 국립공원 덕이거니 해본다.
이것도 좋기도하고 안좋기도하고 ...

하얀 치아가 다 보이도록 웃어제끼던 한상률청년이 파란 하늘에서 보인다. 마라톤에,지리산 천황봉 운해를 단톡방에 올린 아직도 마땅히 젊어보이는 갸는 나의 무등산 종주기를 비웃을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엄청 추웠지만 눈쌓인 무등을 열심히 샷따질을 하며 사진에 담았을것이다.

지공너덜로 가는 길도 정비되어 표말이 되어있으나 시간이 벌써 2시반,너른 바우에 앉을 틈도 없이 걸으니 멀리 낙타봉과 백마능선 그리고 안양산이 보인다.

나는 백마능선을 늘 마음에 그리지만 실제 가보지는 못했다.
다음기회에는 신선대와 백마능선으로해서 안양산 휴양림코스로 해볼까? 마음으로 써놓으면 언젠가 낙타봉에 서있겠지.

드디어 우측에 입석대가 보이고 하늘과 닿는 길에 오르니 장불재.

장불재는 시원하다
서석대와 입석의 마당 장불재의 억새들은 여전했다. 멀리서 그림으로만 표현한 KBS송신탑도 거대하게 서있고 예전에도 고인돌처럼있었나 싶은 돌들이 세개 서있다.
아마 예전에는 넓적바위한개였던것같은데 나의 기억을 믿을수가 없구나.
네시가 다 되가니 시간을 오래 쓸수없다. 예전같지않은 나의 몸무게를 버티고있는 무릅들과 더 버텨야할 내리막길이기때문이다.
오르막보다 더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 스틱을 더 길게하고 내녀가야한다.
평상시같으면 중봉으로가서 토끼등으로 가는데 오늘은 시간관계상 바로 중머리재로 향하다.

중간에 광주천 시원지 팻말이 있다.
나는 이제껏 광주천의 시원지를 용추폭포로 알고 있었는데 장불재와 중머리사이의 샘골이 있었고 거기에 작은 데미샘을 만들어 놓았다.
장불재에서 내려온 물이 여기서부터 계곡을 따라내려가 용추폭포가 되고 제2수원지까지 힘차게 내려가 광주천이 되고 증심사계곡이 합류되어 영산강으로 목포 앞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용추폭포는 어려서 엄마랑 이모들이랑 물 맞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물맞으며 놀다가 수박깨서 먹던 용추폭포, 그리운 시절들이었다.

중머리재가 가까워지니 하늘이 드러났다.
맨들거리던 중머리도 많이 머리가 나고 쉼터도 생겼다.
하얀 옷을 입은 세명의 천사소녀들이 하늘을 찍고 있었다.
위쪽을 바라보니 까마득하게 서석대가 보인다.
다시 포말코스로 내녀오다 오른쪽으로 토끼등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은 너덜강을 통과하는 아름다운 바윗길이 있고 세인봉이 보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산사람에게는 바우냄새가 난다.`

잠시 앉아 바위의 검버섯과 마른 이끼와 함께 해본다.
서쪽에지는 세인봉과 나의 고향, 빛고을을 바라며 이 위대한 침묵속에 홀로있다.

`` May I be there? ``

조용한 물음이 내안에 온다.
지금껏 내안에서 함께 하는 나는 에고일까,아니면 진짜 ``나 `인가 이런 물음마저도 사라져버린 깊은 침묵의 시간.
바위는 늘 그자리에서 어제나 스스로를 내어줄 뿐이다.

조금더 내려가니, 천제단이 나온다 백미터, 순간 어두워지는 숲길과 그리움이 겹친다.

그래 가자, 가서 아버지의 땅, 천제단을 보고가야지. 날은 어두워지지만 나는 무등산의 온갖 루트를 거의 알고있지않는가.
토끼등을 포기하고 바로 당산나무로 내려가면 포말루트와 만나게되어있고 그다음은 그냥 뻥뚫린 길이니 문제없을것같다.

어둑어둑해진 숲길을 뚫고 천제단에 들어서니 뻥뚫린 하늘에 천제단이 환하다.

우리의 정신, 민족의 얼이 돌들 하나 하나 쌓여 뭉쳐있었다.
파란색 철제에 천제단, 그리고 그뒷면에는 미술원 연우회라고 적혀 있다.
의재 선생과 연우회 그리고 아버지의 정신이며 얼이 담긴 곳이다.
나는 대학생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서 기우제를 드린 기억이난다.
유림들이 갓을 쓰고 음식과 술로 지내던 제였다.
이것은 지금도 민학회에서 제를 지낸다고한다.
나중에 하느님을 믿고 천주교에 귀의하셨지만 민족의 얼과 정신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확고하셔서 지금도 대성여중고 교정에는 단군동상이 금빛으로 무등을 바라보고있다.

천제단을 뒤로하고 바로 당산나무쪽으로 향한다. 평상시같으면 절대로내려가지 않을 깔그막 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봉황대까지 내려가서 증심사로 가야한디 ...
이제 어둠은 해를 살라먹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찌르르 찌르르 귀뚜라미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마음속에 원투쓰리포파이브식스를 계속 반복하며 돌에 넘어지지않게 카운팅,또 카운팅하며 내려오니 거대한 당산나무가 우두커니 서있다.

예전에는 가게가 있어 평상에 앉아 막걸리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샀던 곳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당산나무는 앞으로도 세대손손 우리의 자손들의 이야기도 들어줄것이다.

직각의 계단을 계속내려오다보니 오방선생의 작은 교회가 나타나고 십자가가 환하다.
그리고 증심사에 도착하니 7시.
절집에서 비치는 불빛이 반가운것은 집에 가까워진 안도감이다.
이젠 그냥 쭈욱 내려가기만하면된다.

어둠에 싸인 의재미술관과 불빛만 새어나오는 의재의 옛집을 보니 삼애다원도 상상이된다.
아마 오른쪽에 너른 차밭이 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도 없는 너른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며, 갑자기 풀어진 긴장때문인지 온 발목과 허벅지가 아프기시작한다.
오랫만에 맘먹고 한 산행이었다.

먼가를 시작하기위해서는 순간의 체린지가 필요하다고 몸에게 알려주자고한 일이었는데
몸이 몹시 놀랐다고 리플라이가 왔다.

그래도 참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참된 기쁨이나 숭고함 이런 하이 에너지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사람에게는 바우냄새가 난다``

그것은 달콤한 향수같은 그리움이었다.

2020.9.26
막달레나 마리아,요요
무등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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