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두주일 동안에 내게 일어난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 해야겠다


첫번째주 월요일 오후,


여느 때와 같이 네 명의 전문의와 두 명의 응급구조사, 간호사 세 명이 졸졸이 외과


그랜드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우리병원 외과는 주로 유방암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 후 먹고 싸는데 큰 지장이 없는 비교적 안정적인 환자 그룹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회진 중, 유난히 내 눈에 띈, 복수가 차서, 어찌나 배가 불러 숨길조차 힘들어 보이는 환자가 있었다.


아래 원장님이 보고하길 타병원에서 담도암 수술 후 재발을 하고,


말기상태가 되어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어서,


가까운 동네병원을 추천해 주어서, 우리병원 외과로 전원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환자의 배가 너무 불러 있어서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여,


나의 측은지심을 단번에 질러 버렸다는 것이다.


빨리 복수 빼주고 알부민을 놓아서 숨쉬게 해주라고 오더를 내리고 내려왔다.


그리고 다른 일로 그 환자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 목요일 오후 여덟시경,


나는 일주일에 외래환자를 화요일 , 목요일만 보기 때문에 목요일 오후가 되면 사실 파김치가 되어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늦게까지 환자를 보고 저녁을 먹을 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그 환자가 내려 왔단다.


그래서 왜? 물었더니 원장님하고 정신적 상담(?! 왠, 외과의사에게 정신적 상담?)을 원한다고 가족이 내려왔다고 한다.


`정신적 상담? 난데없이? 유방암 환자도 아니고...


이것이 머여?


더구나 그는 말기 암 환자가 아닌가, 뭐라고 해주어야하지? `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대번에 복잡해진다.


하루 종일 나도 지쳐있는 데라는 생각도 들고....


같이 밥을 먹던 두 후배원장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 할 것 같으냐?를 물었더니,


한사람은 쿨 하게 이야기 해주어야한다.


한사람은 아예 말이 없다


나중에 이런 상황에 대해 화순 라이프 크리닉 암 요양병원에서 암 환자들에게 물으니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사의 위로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무튼 식사가 끝나고, 먼저 부인인 보호자를 먼저 만났다.


어떤 병이었고 현재의 환자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이년 전에 담도암 수술을 했고, 두달전에 재발해서 장이 막혀 다시 수술을 했으나,


수술부위가 잘 낮지 않아 장 누출이 있었고 ,


두달 동안 못 먹고 고농도 영양요법으로 누출된장은 어느 정도 나았으나


병은 진행되어 내과 의사선생 말이 며칠을 못 넘길 상황이라고 했다고 한다.


더 이상 무슨 질문이 필요할 것인가, 그래 만나서 환자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아저씨는 사실 아주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두어달을 입으로 먹질 못했으니, 피골이 상접하고 고개 들어 나를 볼 힘조차 없어,


내가 자리를 옮겨 그와 눈을 맞추어야 할 정도 이었다.


마침 차가 있어서 따뜻한 차, 한잔을 주면서 아저씨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아저씨왈,


자기가 깨끗한 암 환자였을 때는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의사들이 수술하자고 하더니,


이제 재발하고 나니 의사들이 귀찮아하는 환자가 되었다는 환자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가 느낄 좌절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한가득 내속에 들어 왔다





나는 삼십년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환자를 돌보아 왔다.


처음 십년은 응급환자와 위암, 대장암등 각종 암을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유방암이나 갑상선암이 지금처럼 많은 시절이 아니고,


위암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구나 한 병원에서 십여년씩 있었기 때문에 내가 수술한 사람들의 추적검사가 되었고,


그들이 살아 있는지, 아니면 재발을 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같이 격어 낸 시절들이 있어서,


젊은 시절 어느 때인가는 수술을 하고 배를 열고 보면


이 환자의 예후가 머릿속에 들어와서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공부가 됐을 때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으로 의사인,


나 스스로에게도 환자에게는 참으로 백해한 일임을 반성한 일이 있다.


최근 십 오년은 유방 갑상선 수술을 하기 때문에 요사이 일년에 한명 혹은 두세 명이지


예전처럼 위 수술이 없어서 타병원에서 전원 되는 경우 외에는 심한 환자가 드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이분을 만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사실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를 하고, 수행을 하면서 내가 의사라는 동일시에서 많이 벗어나,


상황을 보는 것이 전보다 훨씬 객관화되어 있지만,


아주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어찌됐든지 나는 그 순간 그를 도와야하는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의 행위가 필요했을까?


먼저 그에게 내가 권한 것은 아저씨 병만 생각하지 마시고 사는 것을 사세요, 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제 죽니, 병이 심해지니 어쩌니,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지내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는가,


그러니 밖에 나가서 햇빛을 보고, 자동차 굴러가는 것도 보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도 보고, 나무도 보고 ...


이렇게 사는 것을 사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해줄 것 없던 의사는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고 있었다.


혼자 정분난 여자처럼 아저씨 손을 꼭 잡고 눈물로 신의 임재를 불러주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