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3 금요일 26th
가조르ᆢ ᆢ ᆢ팔라스 데 레이(17.6km)

부엔 까미노!

역시나 새벽 길을 걷는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발목이 아픈지도 이주일이 되가지만 나는 여전히 잘(?) 걷고 있다.
두다리에게 너무 감사해서 어젯밤에는 쓰다듬어주고 사랑해주었다.
몇십년을 이 무거운 몸을 잘 지탱해준 노고를 치하도 해 주었다
살을 더 빼서 야들을 더 덜 고생시켜야겠다.

마을 벗어 나기 직전 까미노 옆,
알베르게 바에서 새벽태양을 맞으며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서양여자들이 너무 행복해보여 "니들 참 행복해보인다" 라고 해주었더니 "행복하다"며 정말 진정성있게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그래 저런 삶이다.
여유를 가지고 살살 제시간을 즐기는 것. 오늘도 조금만 가서 오후에 쉬자모드로 바로 돌입한다

이쪽 갈라시아지방으로 갈수록 한국하고 너무 지형이 비슷해서 특별히 우리나라의 시골인지 스페인인지 가끔 헷갈림도 있다.
길도 평범하고 산악인 용어로 말하자면 길이 뻥 뚫여져 있다.
우리나라같으면 나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길이지만.
여기는 까미노.

고속도로와 함께 지나가는 까미노에서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온다.

내가 박자 맞추어 주고 엄지를 해주니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
남쪽? 북쪽? 남쪽이다
그래 북쪽애들은 독재자때문에 나쁜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우리는 한민족 하나다. 그리 알아라 하니 멋적게 웃으며 빠이빠이.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통일되서 잘 살기를 기도해야겠다.

9시반 호스피탈 데 라 쿠르즈에 도착하니
산정에 훌륭한 바가 있어 아침 식사를 하고 가기로한다.

그런데 티나가 들고온 것은 킹 클랩 크기의 왕크로아상에 대왕칼과 포크까지 있었다.

맛도 있고 커피도 오랫만에 짱 맛있게 끓여졌다.
오랫만에 눈앞의 이쁜 풍경이 보이고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

카톡에 보니 여고동창이 너는 의사이고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무리하지말고 건강 조심하라고 문자가 왔다.

순간 정신이 확 깨였다.

내가 거의 한달간 의사라는 페르소나를 잊고 살았다.
온전히 나로서의 삶과 지난 며칠간은 다리아픈 사람으로 앵커링이 좌측다리에 두고 있었다.

맞아 내가 동일시하는 것의 정도가 아니라 의사라는 페르소나는 이미 나의 몸속에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일부였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수술하고 항암부탁하고 온 환자들에 대한 염려가 된다.

또한 그만큼 나의 휴가도 가버렸다.

오늘은 점차 어제보다 더 다리상태가 좋아지니 다시 에고가 들어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된다

내 삶을 생각해보니 마치 날마다 금이 간 물항아리를 매고가는 사람같다는 생각도 든다

끊임없이 물을 길러오고 있지만 금이가서 흘리고 오니 전체를 다 못 가져오는. ..

하지만 오랜시간이 지난 후의 반전을 기대해본다.

금이 간 항아리에서 날마다 흘려 버려진 물이 지나간 자리에서 물을 먹고 자라난 생명의 힘찬 도약과 성장된 모습을...

나는
`토비아스의 우물`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라고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오신거다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구름이 흘러가는 속도로 ....

바람결과 햇빛에 흔들리는 포플러의 강인함과 유연성이 참 좋아보이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