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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원장의 살림토크

살림이란 살리다의 명사입니다.(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2026.7.28.29. 화.수요일 (베르비에ㅡ 성 버나드 성당 ㅡ토리노(예수 수의성당, 왕궁박물관,미술관)
관리자
조회수 : 8092026.08.03 09:42
2026.7.28.29. 화.수요일
(베르비에ㅡ 성 버나드 성당 ㅡ토리노(예수 수의성당, 왕궁박물관,미술관)ㅡㅡ 뮌헨ㅡㅡㅡㅡㅡㅡ인천)

다시 해를 맞이하고 날이 밝았다.
성버나드 성당을 거쳐 토리노까지 가야해서 아침은 간단한 빵과 커피로 먹고,
우리는 잠시 거실 창가에 앉아, 여기저기  그동안의 눈에 띈 것들 안 띈것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성버나드 고개로 향했다.

다행히 오늘의 목적지인 토리노를 가는 도중에 성버나드고개가 있어 계획을 그렇게 잡았다. 
구불한 길을 한없이 올라가는중 멋진 사진도 찍고 1시간반만에 성 버나드패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으로 이탈리아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에머랄드빛 호수가 이뻤다.
푸른 하늘과 회색빛 산과 고요한 호수는 평화롭기만 하다.

이 Pass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해발 약 2,469m의 알프스 고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순례자와 상인, 군대가 넘나들던 중요한 길이었으며, 나폴레옹도 1800년에 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 원정을 했단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 성 버나드 호스피스와 성당이다
우리는 먼저 성당에 들어가보기로 했다.성당 문앞에 침묵을 표하는 수녀님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고 서있어 그냥 침묵하게 된다.
이 작은 성당에도 뒷쪽에 파이프오르간이 있어 부러웠다.
초를 켜고 기도를 드린 후  성당을 나와 잠시 박물관에 들렀다.

이곳은 성 버나드신부님이 국경을 넘다 길잃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도와준 곳으로 유명하고, 잘생기고 용감하기로 유명한 구조견인 세인트버나드(St. Bernard)
개들을 수도사들이 17세기부터 길러 눈보라 속에서 조난자를 찾는 구조 활동에 활용했다고한다.

고개를 내려가는 길에 뷰포인트에 서니 내려온 길도 아득하고, 내려갈 길도 에스자형으로 구불구불, 마치 키르기스탄의 패스와 비슷하고 우리나라 함양에 있는 오도재는 명함도 못 내게 생겼다.

이런 곳을 베낭을 메고 올라가는 젊은이들이 부럽기만하다.
멀리에 소떼들이 있고 세인트버나드가 소떼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시대가 발전하니 개들도 임무가 달라졌을터.

다시 달려 가던중 어느 마을인가 멈춰  세계적인 음식점 맥도날드에서
치킨과 커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여 토리노에서의 시간을 더 가질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기대하던  토리노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굉장히 잘 정리된 바로크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의 거리에 발코니들이 인상깊었고 관광객도 적어 조용하고 편안한 도시였다.

토리노는 이탈리아 통일의 출발점이자 사보이 왕가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사보이 왕가(House of Savoy)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가 가운데 하나로, 11세기 초 알프스 지역의 사보이 백작령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봉건 가문이었지만, 수백 년에 걸쳐 세력을 키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의해공국을 세우고, 마침내 이탈리아를 통일한 왕가가 되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사이에  끼어 서로 견제와 혼인동맹으로 살아남아  나폴레옹에게 져서 망명하였으나  그의 사후 다시 동맹들의 힘으로 왕국이 살아나고  이탈리아를 통일한 왕가였다고한다

오랫만에 오성급 호텔에 들어서니 시골쥐가 도시에 온 것같아 어색함이 이루말할 수없지만 오랫만에 욕조에 몸을 담글수있다는 것으로 300프로 만족된다.

호텔은 '토리노의 응접실'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광장인 산 카를로광장으로 바로 연결되어 걸어서 토리노 대성당(예수 수의 성당)에 갔다.

나의 절친 국명희선생이 그토록 가보라고 했고, 그곳에서 사온 사진에 찍힌 두가지 사진중 젊은 예수님의 복원사진은 내맘에 너무 들어 나의 프사에 있다.

예수님얼굴을 감쌌다던 수의 앞에 앉아 그의 고난을 깊이 느꼈다.
진위가 무슨 상관이랴, 그와 연결된다는 그 믿음이 중요한 것아닌가?
눈물한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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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며 한없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크리스찬이 해야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곳에서 왕궁까지는 서로 연결되어 왕궁부터 가 보았는데 사보이 왕가의 화려함이 베르사이유궁전의 내부보다 더 화려한것 같았다.

군대무기를 전시한 곳도 있는데, 사람이고 말이고  저렇게 무거운 갑옷을 입고 전투가 되었을까싶었다.

아, 왕궁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허비하여 30분정도 밖에 시간이 안남아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찾아 허둥지둥 미술관을 찾았는데 오매 20분이나 남았는디 끝났단다. 
나는 포기했는디 우리의 수호자, 잭(투어오로라 사장님)은 바로  아직 20분 남았는데 표는 왜 팔았느냐고 외치니, 그들도 어쩔수없이 수긍하고 엘리베이터로  가서 보고 내려오라고해서 올라갔다.
 처음에 비너스인지모르고 거짓말장이 쳇봇이 성모자상이라고 해서 아무리 찾아도 보티첼리것이 아니다.
다시 알아보니 비너스라고 한다.

방금 지나온 나체의 그녀, ㅋㅋ.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할까?

자세히 보면 나체가 아니라 투명한 겉옷이 보인다.
요새 같으면 션하게 투명한 것까지 그려 부렸을 것인디 ...
그래도 비례가 맞고 당당한 나체에 소중한 곳을 가린 그녀는 먼 생각을 하고있을까? 
배를 보니 혹 임산부일지도 모르겠다.

 칼퇴근을 하려는 직원들 등살에 정신없이 나와, 성당앞 광장에 변치에 앉아,잠시 정신줄을 다시 챙기고 있는데,흰색으로 분탕질을 해서 피에로 분장한 젊은이가 다가와 사진을 요리 찍고 죠리찍고 셀카도 함께... 아~~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했는데 역시나 모자를 벗고 유로화를 보여준다.
우리 시간없고, 노 머니!!! 를 외치니 그냥 가버렸다.
차라리 버스킹을 하는 나이든  아저씨에게 돈을 주는 것이 나았다.

너무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 일단 저녁식사후 호텔로 가는 도중에 있는 니체의 집과 토리노의 말로 유명한 광장에 가기로했다.

 원래 계획은 걸어서 10분거리에 예약된 유명한 소고기집인데 우리의 몸컨디션은 1분도 걷기싫어 예약취소시키고, 가장 가까운 거리의 중국식당으로 가기로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
한접시에 6유로의 비교적 저렴했고 특히 복음밥이 매우 맛있었다.

식사후 서서히 걸어가니 니체가 마부에게 채찍맞는 것을 보고 부둥켜 울었다는 광장과 니체가 머문 집에 갔다.
니체는 이 말을 붙들고 "어머니,나는 바보였어요!"(사실 이말은 정확치는 않는 것같다.)라고 외치고 정신줄을 놓았다.
그는 그후 11년을 정신병동에 누워지내다 끝내 제정신을 못차리고 세상을 떠났다하니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중세의 신본주의에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과 이성이 발전하면서 유럽 사회는 더 이상 기독교적 신앙을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믿지 않게 되었다.

 즉, 신이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에서 사라졌다고 문화적·역사적 진단한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했는데 오히려 "신을 죽였다"라고 표현함이 옳을까?

그렇다면,
"신이 죽은 뒤에는 무엇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줄 것인가?" 
그는 인간이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을 크게 우려했던 거같다.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이상적인 인간상을 초인(Übermensch)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실존주의의 태동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도 젊은 시절, 니체의 초인사상이나 실존주의에 빠져있었고 그것은 내게 현실적인 삶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내면의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곳저곳 여러학문과 명상을 찾아 헤메며 세월보낸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니체는 초인이었을까?  
그는 정말 무신론자였을까?
밤을 새면서 생각해봐도 그의 마지막은 참 그렇다.

잠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본 길고 지루하지만 의미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벨라 타르 감독이 만든 영화 '토리노의 말'이다.
이 영화는 니체가 떠난 뒤 그 말과 마부,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를 상상해서 만든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은  화면이 열리기 전, 나레이션으로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일어난 유명한 일화를 들려준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마차꾼이 움직이지 않는 말을 채찍질하는 장면을 보고 달려가 말의 목을 끌어안은 채 흐느껴 울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 니체는 정신이 무너졌고, 거의 말을 하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영화는 곧바로 이렇게 묻는다.

"니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말과 마부와 그의 딸의 보낸 6일간의 이야기인데, 
먼저 말이 움직이지 않고, 매일 반복되는 물깃는 우물이 말라 그곳을 버리고 떠나려하지만 밖의 세상은 더 심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침내 불이 사라지고 빛도 사라져 어둔 방에서 두모자는 생감자를 먹는다.
딸에게 한 아버지의 말,

 "먹어, 먹어야 해".

 참으로 인상적인 대사이다.

인간과 동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모든 것이 멈춰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영화로  하느님의 창조의 6일을  역창조의 소진과 세상의 종말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쓸쓸하고 어두운 영화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야한다.
돌을 다시 올리는 시지프처럼.

밤새 잠못이루고 니체를 생각하며 머리가 좀 아팠다.

니체는 초인이었을까?

여전히 내맘속에는 아닌 것같다.

초인을 닮고자 애썼으나 초인이 못된 사람, 
예수를 닮고자 했으나 아직도 부족한 이라는 나의 생각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음날 아침, 우리는 토리노 공항에 가서 국내선으로 뮌헨으로 갔다.
 4시간반을 트랜짓하여 뮌헨에서 11시간 비행후 인천공항에 목요일 아침에 도착,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도합 24시간만에  내고향에 도착하니 無等이 떡허니 인사한다.
날은 뜨겁지만 내 몸과 마음은 그냥, 마냥 좋기만하다.

이제 여행기를 마쳐야 할시간 지난 15일간 기인 시간들은 다시 모래알처럼 내손을 빠져나가고 손바닥엔 온기만 남았구나.

아직도 해야할 일들,하고 싶은 일들,할 수있는 일이 있는 지금의 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모든 것이 은총이다.  은총~~♡♡♡

긴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막달레나 마리아,요요마가 마음 가득한 사랑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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