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5. 수요일.12일째

밤새 나쁜 꿈속에 헤메이다, 늦잠을 잤다.
이제는 아주 가끔씩만 보이는 미당의 갈맷빛 무등을 보며, 세월따라 성숙해진 청아한 가물색의 상서로움에 취해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협주곡을 듣고 있다

카라얀이 길들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안 소피뮤터와 평생 카라얀의 이인자 세이지 오자와와 베를린 필오케스트라연주.

클래식에 입문하고 얼마 되지않았을 때, 다락 김명선대표집에 초청되어 엉청 비싸고 소리좋은 오디오로 들었는데, 그때 대표님이 돌아가실때 관에 넣어주시라던 곡이라고해서 엄청 궁금했다.
그날 저녁 집에와서 이 연주자,저 연주자것으로 거의 스무번도 더 듣고 왜 이곡을 선택이었을까를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다섯번의 티파니의 울림으로 시작되는 이곡의 주제는 몇번만 들어도 알수있을 만큼 변주되어 연주되고 바이올린 카덴차도 멋지다.
들어볼수록 대표님이 왜 그랬는지, 이제는 쬐끔 알것도같고
부드럽고 때론 강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가슴을 파고 드는 곡이다.
꼭 추천해주고싶다. 개인적으론 막심 벤게로프가 연주하는 것도 추천하고싶다.

아직도 덜 떨어진 은행나무옆에 이쁜 새한마리가 와 있다. 귀여운 넘, 한참을 같이 이야기하다 가버리니 조금은 아쉬운 맘이 크지만 내일을 기약하자. 나도 곧 자유로워질것이니...
오전에는 최작가가 소개한 해남의 여류시인 고정희의 시를 읽었다.
한국신학대학을 나오고 현대문학으로 데뷔한 시인인데 아주 서정적이고 외로움을 많이 탄 시인인 것같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지리산에서 실족하여 소천한 아까운 시인의 시를 하나 소개한다.

강가에서 ㅡ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둑 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여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12시가 되자 택배가 왔다.
서울사는 내친구 기명이가 알타리 무우지, 갓을 넣은 파김치에, 멸치복음까지 어찌나 꽁꽁 비니루로 싸서 보냈는지 그정성에 거의 십분을 비닐푸는데 사용할 정도였다.
빠알간 알타리를 한입하니 온갖 시름이 없어지느듯 엄청 맛있어서 단숨에 두개 클리어하고 인증샷.

기명이는 내 여고때 짝꿍이었다. 여전히 순수하고 맘씨고운 권사님,
기명아~~ 고맙다.
저녁까지도 두번이나 파김치에 행복에 취해 먹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이런 고마움을 어찌 다 값을까.
격리되어 있으면서 더 사랑받는 느낌에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세상에 그누구가 부러울까요~

괜히 흥얼거리며 거실을 요리조리 왔다갔다하다 또 무등을 본다.

저런 완벽한 산이 세계 어느 도시에 있을까.
청화대가 있는 북한산보다 더 당당하고 포용적인 산.

오후에는 유당 최상옥회장님의 소천소식이다.
선친과 가까우셨던 분이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시기 어려운 부부모임에 늘 아버지는 나를 대동하고 가셔서 김정형 외과 원장님과 늘 만나뵙던 회장님은 늘 말이 없이 평안하셨던 분이셨다.
남화토건, 서석고등학교 등등 광주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시고 조용히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실천하신 너무 훌륭한 어르신의 소천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폴리포니 앙상블의 `바람이 되어`를 그분의 영전에 바친다.
이생의 몸을 버리고 성령으로 평안하시길 ...
먼저가신 친구들과 해후하시길 기도해본다.

저녁에는 길위에서라는 스님들 출가하고 수행하는 다큐를 보고, 출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된다.
몸은 그렇다할지라도 마음의 출가가 내게 있었을까?
늘 가출하는 마음을 잡아두고 진정으로 출가는 못해서 그 용기와 수행이 부럽기도하구나.

스님들의 고행도 침묵중에 화두를 잡고 참선하는 모습도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넘어가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오늘도 달은 점차 살이 쪄 상현달이되어간다
나의 격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럿구나.
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고 나니 맘도 깨끗해진다.

있는 그대로 절로절로 살아가는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구름에 달가듯이 ...